1. 살인의 추억 내용 들여다보기
한적한 한 시골마을에 연쇄적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지금처럼 과학수사라는 것은 기대도 할 수 없으며, 증거 조작은 물론 멀쩡한 사람을 용의자로 만들던 그 시절!
피해자는 늘어만 가고, 강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에게는 물증이 나오질 않습니다.
자신의 감을 전적으로 믿으며, 수사를 위해서는 점집을 찾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형사와 용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사...
어떻게 보면 오합지졸들이 모인 이 시골에서 과연 심각한 연쇄살인사건이 해결이 될지!
새로운 형사와 반장의 투입으로 이 사건은 해결될 수 있을까?
실제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영화 살인의 추억은 내가 정말 언제 몇 번을 봐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수작으로 꼽는 작품입니다.
지금부터 살인의 추억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2. 계속 보게되는 잔인한 추억
누구에게나 수십 번을 봐도 지겹지 않은 영화가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기술과 배우들로 만들어진 최신영화가 많이 나와도 막상 여유시간이 생겨 영화 한 편을 보라고 하면 저는 최신 영화보다는 그동안 내가 봐왔던 영화들 중에 유독 가슴에 남는 영화를 고르곤 합니다.
그런 영화가 많지 않지만 특히나 수십 번을 봐도 지겹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입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내용도 어둡고, 개봉 당시뿐만 아니라 불과 몇 년 전 진범이 잡히기 전까지 미재사건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찝찝하고, 종결되지 않은 사건을 다루었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나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을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삼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크게 두 부류입니다.
감동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관객들에게 눈물과 웃음 그리고 큰 감동을 안겨주거나 또는 살인의 추억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었거나...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는 아마 연령대의 제한이 없다보니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기 좋은 특징이 있는 반면, 좋지 않은 사건을 다룬 영화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연령제한이 있고 그 호불호 또한 크게 갈릴 거라 생각됩니다.
살인의 추억 또한 단순한 사건이 아닌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다보니 내용상으로 호불호가 있기도 하겠지만 감독의 연출 방식과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불호보다는 호를 더 많이 이끌어내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심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화 괴물은 물론 각본을 맡았던 남극일기 그리고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도 다 알만한 기생충까지 영화 속을 들여다봤을 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세심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괴물의 경우도 살인의 추억처럼 여러번 봐도 지겹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10번 정도 관람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봐서는 물론 허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 당시 괴물이 그려낸 시각적인 효과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습니다.
다시 살인의 추억으로 돌아와서 지금도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한 장면이 있는데 아직도 의문이 드는 장면입니다. 바로 남편에게 우산을 전해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공장 앞 논두렁에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인데 범인이 논 속에 숨어서 피해자를 조용히 따라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여인은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바람에 벼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는데 그 사이에 거뭇하게 숨어있는 범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형체만 흐릿하게 보이며 숨어서 몰래 보고 있기 때문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숨는 모습...
그런데 이 장면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습니다.
물론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인건지 아니면 정말 봉준호 감독님이 의도한 장면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그 장면을 의식하고 어둠 속에 쑥~ 올라왔다 내려가는 검은 물체를 본다면 아마도 공포가 더 크게 다가올 겁니다.
그리고 명장면으로 손 꼽히는 장면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용의자를 쫓아 시멘트 공장으로 온 송강호 배우와 김상경 배우가 남자 여럿을 세워놓고 용의자를 찾습니다.
이때까지도 송강호는 자신의 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형사이고, 김상경은 서류만이 정확한 사실을 말해준다며 나름 과학 수사를 지향하는 전혀 다른 수사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그동안 주장하던 수사 스타일을 뒤집어서 보여줍니다.
자신의 감을 전적으로 믿었던 송강호는 아무리 남자들의 얼굴을 들여다봐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보이지 않게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게된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장면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장면입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의 이 대사를 만들어낸 철로에서의 장면!
그렇게 기다리던 물증 DNA결과를 받아 든 허탈한 두 사람의 표정과 알듯 모를듯한 용의자 박해일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장면들 외에도 영화 속에는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영화 초반 용의자로 몰렸지만, 결국은 사건의 큰 열쇠를 쥐고 있던 목격자로 밝혀진 백광호가 형사들을 피해 도망가던 장면, 용의자를 재우지 않고 강제로 자백을 받아내던 장면, 여형사를 이용해서 함정수사를 벌이던 장면 등...
맨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보던 관객들에게 뒤통수가 당기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범인이 범행 장소를 추억하며 찾아왔다니!!
지금에야 진범이 잡혀서 다행이지만, 진범이 잡히기 전까지는 이 영화를 즐겨 보면서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답답한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긴 세월, 벌써 19년 동안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감독의 연출이 곳곳에서 세심함을 빛나게 한 작품입니다.
한 동안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빨간색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괴담이 돌 정도였는데 이제는 진범이 잡혔으니 좀 더 마음 편하게 살인의 추억을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 만든 추억
살인의 추억뿐만 아니라 기생충과 괴물 등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영화 연출도 중요하지만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깨닫게 됩니다.
많은 작품을 함께 한 배우 송강호를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벌써 여러 작품을 봉준호 감독과 함께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송강호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나도 송강호 배우가 출연한 작품은 안 본 작품이 없을 정도로 송강호 배우의 열혈팬입니다.
특별하게 잘 생긴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델처럼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지만 왜 송강호 배우는 그가 출연한 작품을 계속 보게끔 만드는 걸까?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편안합니다. 어떤 배역을 맡든 100퍼센트 그 배역에 녹아들어 연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괴물에서는 다소 철은 없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잘 그려 냈고, 기생충에서도 무능하면서도 능구렁이 같은 한 가정의 가장을 개성 있게 그려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 중 하나는 우아한 세계입니다. 건달이지만 한 가정의 가장인 주인공!
영화 제목처럼 우아한 세계는 존재하지만 이 주인공은 전혀 우아한 세계에는 발조차 들일 수 없는 처지입니다.
가족들은 우아한 세계에서 생활하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라면이나 먹으면서 그들이 우아한 세계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불쌍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을 정말 처절하리만큼 잘 표현했습니다.
더 웃기면서 슬픈 것은 그런 자신의 처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걸 영화 속 자신도 알기 때문에 먹던 라면그릇을 집어 던집니다. 하지만 이내 주섬주섬 깨진 그릇을 정리합니다. 이 장면을 이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낼 배우는 송강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활연기까지도 눈물을 끄집어내는 내공이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지...
앞으로도 송강호 배우의 작품이 기대가 됩니다.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인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말입니다.
그 외에도 박해일 배우가 눈길을 끕니다.
영화 중후반부터 나오며 용의자로 큰 비중이긴 하지만 영화속 그의 모습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말수가 적고, 알듯 모를듯한 박해일 배우의 표정이 왠지 그가 범인일 것 같고 그가 범인이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송강호 배우처럼 박해일 배우가 나온 작품도 모두 감상을 했습니다. 선비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점잖지 못한 선생님의 역할, 최근 한산에서의 이순신 역까지!
곱상한 외모로 배역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을 거라는 걱정을 버리게 하고, 점점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내는 박해일 배우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