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헤어질 결심 그 영화의 시작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감독인데 사실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자주, 또는 즐겨보지 않는 것 같다.
처음에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접한 건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그 영화를 보고 이영애, 이병헌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관심이 깊어지고 또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나는(물론 지금도 모르지만) 박찬욱 감독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그의 작품에 대해 어떤 평을 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 후 박찬욱 감독이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작품이 바로 올드보이이다.
독특한 색감과 촬영기법, 그리고 기이하다고 느낄 정도의 캐릭터들과 반전을 안겨주는 스토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 후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챙겨서 보곤 했는데 친절한 금자 씨, 소년 천국에 가다, 박쥐 등 어느 작품 하나 쉬워 보이는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다소 어둡고 거친 영상 표현, 피 튀기는 잔인함과 난해한 인물들의 감정 묘사 등...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박찬욱 감독이라고 하면 일단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이 심어진 것 같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든 정점에 있는 영화가 바로 2016년 개봉한 아가씨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갖고 봤지만 좋고 나쁨을 떠나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준 영화이다. 감히 영상으로 표현하고 대중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소재를 곁들인 영화이기 때문에 인물들 간의 속고 속는 관계와 의상, 배경 등 눈을 즐겁게 하는 각종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에 담기 어려웠던 영화라고 할까?
그래서 솔직히 이번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이 풍기듯이 남녀 간의 감정이 주를 이루는 작품일 텐데 과연 박찬우 감독이 그 감정선을 섬세하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나만의 걱정 때문이랄까?
헤어질 결심을 기대한 것은 박해일이라는 배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소년, 천국에 가다는 작품에서는 물론 살인의 추억과 연애의 목적이라는 작품을 보고 박해일 배우의 팬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선해 보이는 얼굴과 그렇지 못한 행동 및 언행을 보여준 연애의 목적이 박해일이라는 배우에게 끌린 가장 큰 이유!
박찬욱 감독이 박해일과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탕웨이 두 배우를 어떻게 표현하고 이 두 배우를 이용해 어떤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 냈을지 기대감을 갖게 한 영화가 바로 헤어질 결심이었다.
2. 의심이 먼저일까? 아니면 관심이 먼저일까?
이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스토리를 살펴보려고 한다.
산 정상에서 한 남자가 추락한 변사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한 남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변사체로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내 서래의 반응은 너무나 침착하다.
보통 배우자가 사망하면 일상이 무너진다. 그렇지만 서래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고 너무나 평온하게 일상으로 복귀한다. 보통의 유가족과는 사뭇 다른 서래의 반응에 경찰은 서래를 용의 선상에 올리고 해준은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언어, 단어 선택!
한국말에 서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단어 선택은 묘한 기류를 남긴다.
해준은 그런 서래를 잠복수사, 탐문, 심문 등을 통해서 조사해 가는데 수사를 할수록 해준이 느끼는 감정이 의심에서 비롯된 순수한 수사인지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관심인지 모호해진다. 아니 오히려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것을 해준도 알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도 안다.
서래의 감정은 좀처럼 짐작하기가 어렵다. 해준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망설임 없는 행동으로 그를 대한다.
어쩌면 일정한 선을 긋고 그 안에서 서래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해준과는 달리 과감하게 상대하는 서래의 모습이 당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을 용의자로 대하는 해준의 마음을 갖고 노는 수준이라고 할까?
이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시작과 마침내 마주할 그 감정의 끝에는 어떤 결론이 있는 걸까?
왠지 두 남녀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듯한 영화 헤어질 결심! 박해일과 탕웨이의 섬세한 감정표현과 청록색이 주가 되는 화면의 신비로움이 조화로운 작품이다.
또한 수사극과 로맨스를 박찬욱 감독만의 색깔로 잘 섞어놓은 작품이다.
3. 헤어질 결심이 찾아낸 또 다른 보물 김신영
김신영이 영화에 나온다고? 내가 아는 그 개그맨 김신영?
아마도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많을듯하다.
그동안 많은 개그프로와 라디오 디제이로 재치 있는 입담을 선보인 김신영이 어떻게 박찬욱 감독의 눈에 배우로 눈에 들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김신영이라는 개그맨이 아닌 배우 김신영으로 선입견 없이 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순간 내 소중한 영화감상의 시간 또한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개그맨이라는 가벼운 이미지를 벗고, 왕따를 당하는 시골 형사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 애쓴 김신영 배우의 자세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워낙에 사투리에 강한 김신영은 이번에도 맛깔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하며 해준 곁에서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형사 연수역을 맡았는데 동료 형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인물이다.
박찬욱 감독이 '타고난 배우'라고 칭찬하며 선택한 김신영! 김신영은 이미 많은 개그 코너에서도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아왔고, 현재 가수 다비 이모라는 캐릭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캐릭터의 천재가 아닐까?
얼마 전부터는 송해 선생님의 뒤를 이어 전국 노래자랑의 진행자로도 발탁되어 정말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박찬욱 감독처럼 감독들의 눈에 띄어 또 다른 캐릭터로 빛을 낼 수 있을까?
어떤 캐릭터로 어떤 작품에서 또 맛깔난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를 하게 하는 배우 김신영!
김신영 외에도 박정민, 이정현, 고경표 등 다수의 출연이 영화의 재미를 높였던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은 한 번만 봐서는 감독이 이야기하려는 바와 배우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는 영화인 것 같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봐야 보지 못했던 장면이나 놓쳤던 배우들의 대사, 감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푸르스름한 영화의 분위기와 아슬아슬한 주인공들의 감정 줄타기가 매력적인 헤어질 결심!